아침기도편지
목요일 아침의 좀 더 깊은 영성 본문
2024, 11.14. Thu
(@Holy Spirit; 목요일 아침의 좀 더 깊은 영성)
하나님, 이 아침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은혜의 부스러기’ 입니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가서 딸의 병을 고쳐달라 했을 때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셨지만 여인은 비록 개라도 그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낳겠다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게 간절한 자에게 흘러가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새벽에 3년 전에 쓴 기도편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떨어뜨려주시면 저는 살 수 있습니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절 앞뒤가 꽉 막혀 길이 보이지 않던 시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기도하는 것 뿐이었고 그 때 낮아진 심령가운데 주님께 드린 기도가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떨어뜨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 시간이 복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을 낮추어서 복을 주기 위함이었다고 하셨던 것처럼 고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복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복이란 은혜란 그것을 받을 만한 상태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개라고 불려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낮은 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달라고 하는 간절한 믿음, 그것이 참으로 복된 은혜입니다.
하나님, 영의 세계는 참으로 심오하고 믿음으로 사는 이 땅에서의 삶은 알면 알수록 경험하면 할수록 너무 놀랍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세계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이 끊임없이 샘솟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0년간의 광야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강에 지체없이 담대하게 성큼 발을 담그고 걸어갈 만큼 믿음이 성장했고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속에 이스라엘은 다시한번 큰 물 아래 마른 땅을 밝고 건너갔습니다. 여리고성의 두명의 정탐꾼은 담대한 믿음으로 민첩하게 행동하여 기생 라합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적군의 진지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위험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라합을 준비시키신 것이었습니다. 여리고를 일주일동안 빙빙도는 이상한 명령에도 순종함으로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는 기적을 다시한번 경험함으로 손쉽게 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앙이란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고 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됩니다. 짧은 제 삶을 돌이켜 볼때에도 그런 하나님을 참 많이 경험했던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했던 그 현장에서도, 물위를 걷다가 물에 빠진 베드로의 이야기에서도, 반대편으로 그물을 던지라했던 갈릴이 호수에서도,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의심하느냐 말씀하신 예수님의 그 물음이 시대와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살아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찬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닌 말씀의 방식과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허한 세상의 소리, 나를 두렵게하고 걱정하게 하고 위협하는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나를 강하고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게 하는 능력의 소리와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평안의 소리, 그 소리에 귀 기울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온통 그러한 말씀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은 술취한 것 같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 표현하고 있고 취한다라는 것은 깊이 심취해 있는 모습이고 매우 단순하고 담대한 모습인 것을 알게 됩니다. 다른 가치관과 방식으로 사는 것, 세상을 다른 세계관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신앙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율법을 주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하신 것처럼 저에게 오늘도 말씀을 주신 이유는 나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느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아갈때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보내며 대화할 때 나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임을 알게됩니다. 하나님의 언어로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할 수 있게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느 유명한 연예인에게 동료 연예인이 물었습니다. 너는 술담배도 안하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나는 운동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고 나의 삶을 참 재미있게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그 사람만의 재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말씀 안에 재미가 있고, 주님 안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이 아니라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 즐거움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것 같은 즐거움이고 세상과는 다른 재미인 것입니다. 엄마를 독차지하려는 아이처럼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평안을 독차지하려 하나님의 손을 꼭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주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은혜의 부서러기라도 떨어뜨려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 부서러기만으로도 저는 큰 만족과 기쁨이 있음을 고백드립니다. 이 아침에도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어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나의 하나님을 참 사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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