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도편지

수술실의 어린 아이의 영성 본문

2024년의 모든 이야기/12월의 편지

수술실의 어린 아이의 영성

에버모닝 2024. 12. 13. 09:07

2024, 12.13. Fri
(@Holy Spirit; 수술실의 어린아이의 영성)

하나님, 이 아침에도 늘 하던 대로 말씀을 필사하고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을 묵상할 때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얼마 전 우연하게 본 어미새가 그 새끼들을 날개 안에 넣고 보호하고 있는 영상이었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어미새는 그 비를 다 맞으면서 날개를 펴서 새끼들이 비를 맞지 않게 하고 있었습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쉰다 하는 찬양과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신다고 고백하는 시편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지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날 주일학교를 갔다 왔을 때 온몸이 꽁꽁 얼어 있는 나를 보고 이불을 덮고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이불을 열어 들어오라고 했을 때 그리로 쏙 들어가서 몸을 녹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포근함이 주 날개 밑일 것입니다. 새찬 비바람에도 어미새가 그 날개 밑으로 새끼들을 모으듯이 그 안에서 새끼들은 어미새의 따뜻한 체온과 심장소리를 느끼며 안정을 찾고 평안을 누리듯이 주님의 날개 밑이란 그런 것이라 믿습니다.

어린아이의 세계에서는 엄마가 전부이고 아빠가 전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종일 엄마를 부르고 아빠를 부르며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청하는 것은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전부이고 그렇게 부르고 조르면서 그것에 반응하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나는 안전하다 나는 엄마 아빠와 잘 연결되어 있다 하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종 예수님을 묵상할때 이 땅에 계실 때 그 모습은 아버지 앞의 어린아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부를 때 하나님은 언제나 대답하셨고 아버지께 요청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요청에 죽은 자를 살리시기도 눈먼 자를 보게 하시기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가시고 무리를 피해서 기도하러 가신 것은 아버지와 온전히 함께 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마음껏 아버지를 부르고 대화하면서 내가 아버지와 잘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안정감과 평안을 누리셨을 것입니다. 육신을 가지신 영적인 존재이셨던 예수님은 그렇게 이 땅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저 또한 새벽 미명에 기도하고 시시때때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할 때 내가 아버지 하나님과 잘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어미새의 날개 밑에 들어가 있듯이 아버지의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있듯이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며 누리셨던 것과 같은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한없이 어린아이과 같던 예수님은 죽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기도,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먹으면서 하셨던 말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중보 하셨던 기도, 내가 가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은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이라고 위로하시며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아무리 불러도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외쳐도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아버지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 두려움과 공포를 예수님은 겪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영적으로 분리가 되었던 것이고 그것이 예수님이 경험하신 죽음이었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의 경험했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4살정밖에 안 되는 아이가 집에서 뛰다 넘어져서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이내 이마에 길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라서 상처를 타올로 누르고 근처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습니다. 깊이 찢어져서 꿰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놀라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아이를 안고 수수실로 들어가서 수술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몇 명의 스텝이 들어와서 아이와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참 놀랍고 감사한 것은 그 순간 아이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 아는 듯 웃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한 명씩 똑바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상황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칠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는 너무 의젓하게 수술대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에게는 너무 큰 수술대였지만 조그만 몸으로 수술대를 장악한듯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상체를 고정시키는 옷을 입혔고 팔이 움직이지 않아 매우 답답하고 무서웠을 것 같은데 순순히 옷을 입고 누웠습니다. 누워있는 아이를 안고 잠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빠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술대에서 떨어져 한쪽 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아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이내 마취약을 주사하였고 아이는 스르르 눈을 감기 시작했는데 그 입술에 아빠 아빠 아빠 부르며 잠이 들었습니다. 그 아빠 아빠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생각할 때마다 그때 수술대에 누워있던 아이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그 모든 일들을 의젓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였듯이 예수님도 그러셔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수술대에서 무서웠지만 웃음을 지었보였던 아이처럼 예수님은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잠이 들듯 다 이루었다 하시며 고개를 숙이고 영혼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이에게 참 감사합니다. 수술실에서 울지도 않았고 수술대 위에서 웃으며 나는 괜찮아요 하는 듯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마지막에 혼자 누워서 아빠를 부르면서 잠들며 그 상황을 잘 감당해 준 아이에게 참 감사합니다. 아마도 하나님도 예수님께 비슷한 마음이실 거라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한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은 그렇게 아버지께 죽음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는 고통과 벌거벗은 수치와 온갖 욕설과 저주와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심으로 그 모든 일들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이 복음이 오늘도 내게 능력이 되어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 됩니다.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순종과 이를 화답하는 내 안의 성령의 감사함에서 오는 것임을 고백드릴 때에, 이 아침에도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 되어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며, 복음을 깊이 알게 해 준 사랑하는 딸에게 감사하며 나의 하나님을 참 사랑합니다 고백드립니다. 아멘.

'2024년의 모든 이야기 > 12월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넬료와 같은 오늘의 영성  (2) 2024.12.17
세 개의 하나님 나라  (2) 2024.12.16
기도하러 가는 길의 영성  (4) 2024.12.12
주인이 아닌 영성  (2) 2024.12.11
하나님의 권능의 영성  (1) 2024.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