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도편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
2024, 2. 14. Wed
(투썸플레이스, 정동)
하나님, 어제부터 몸에 힘이 없습니다. 체한 후로 먹지를 못하니 힘이 없고 틈만 나면 자게 됩니다. 아프고 연약한 육체를 잠시나마 충분히 누려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연약함 속에서 새로운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으니 이것도 제게 유익입니다. 몸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으니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어제는 이 카페에 첫 손님으로 와서 나도 모르게 한 시간을 졸았었는데, 오늘은 첫 손님으로 와서 말씀을 필사하고 하나님께 편지를쓰니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참 신비로운 것 같습니다. 보통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3개월 만에 쓰겠다고 했지만 10년이나 걸려서 썼는데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를 잘 설명을 해주었고 결국 이성의 한계로 알 수 없는 지난2500년 동안 해왔던 형이상학적인 신이나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는 신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는 성자를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은 현실세계에 영향을 주는 가르침을 했던 것에 반해 종교는 하늘의 가치를 가지고 현실을 옥죄고 있는것에 대해서 비판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가난하고 불행한 어린시절을 살았던 까뮈가 부조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도 이 모든 이야기가 충분히 공감하고 헤어려 볼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다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 시대를 사는 지성인으로 할 수 있는 참 훌륭한 책이고 사상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시대를 이끄는 사상이나 사조도 하나님의 지혜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신학자도 인문학자도 아니지만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며 시대에 영향을 준 책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깊이 알 수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보고 매일 변화하는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발견합니다. 세계대전후에 냉전의 긴장감이 신자유주의라는 물결로 이어지며 세계는 급속히 하나가 되어갔습니다. 자유무역을 통해 시장이 개방되고 문화가 개방되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경제가 발전하여 물질적인 풍요로 이어졌습니다. 이 나라도 그 덕에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누렸던 풍요는 이제 자국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리쇼어링이 벌어지고 있고 외국인의 이주를 막고 있고 자국우선주의로 급속히 변화되고 있는 것을 보게됩니다. 힘의 균형이 깨지다보니 전쟁이 일어나고 세계는 혼란스럽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성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주의의 틀안에서 성장률이라는숫자가 사람들을 옥죄이고 있고 공정한 나라를 걸고 시작된 모든 정권은 늘 실패하고 한번도 완전한 이상 국가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믿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순과 연약함 속에서 변화되는 국제정세를 보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완전한 나라를 더 소망하게 됩니다)
히지만 하나님, 시대는 늘 불완전하였지만 그 안에서 주님은 늘 주님의 일을 이루어오셨습니다. 지금도 복음은 전파되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있습니다. 목회자로 선교사로 결단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님께 나아오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길을 기쁨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참 아름다운 고백의 찬양입니다. 하나님, 저를 돌아보았을 때 세상은 부조리 하지도 않고 불공평하지도 않습니다.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보면서 누구도 부조리하다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제곁에는 가족도 없고 믿었던 사람들은 다 떠났고 이루었던 모든 것들을 다 잃고 사람들에게 싫어버린바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정의롭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아시고 저도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칸트의 이야기처럼 이성적으로 알수는 없을지 몰라도 날마다 말씀속에서 감동을 주시고 주님 생각에 눈물나게 하시고 내 생각속에서 내 마음속에서 늘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이 알 수 없는 성령의 신비한 체험도 하고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이 하셨던 신비한 이적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을 아는데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고 싶지 않고 하나님을 안다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논리적으로도 하나님은 계시고 바울의 이야기처럼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신성을 밝히 알 수 있고, 날 사랑한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사랑한다 고백하며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것은 사랑의 감정입니다. 제 의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하고싶어 합니다. 그것이 제 기쁨이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고백했던것처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고 성경이 사실이 아니라 할찌라도 저는 끝까지 하나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지금껏 하나님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과 모든 기도와 편지와 사랑만으로도 너무 만족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뚜렷히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정치적, 학문적, 문화적, 사상적, 자연환경적으로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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